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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 이스라엘의 왕

다윗 이야기, 어디까지 역사일까

다윗은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린 소년, 이스라엘의 왕,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이 세 이야기를 성경과 고고학, 여러 종교의 시각으로 차례로 살펴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사무엘상 17:4-11 · 사무엘상 17:45-50 · 사무엘하 5:1-5 · 사무엘하 11:1-5 · 사무엘하 12:1-13 · 사무엘하 21:19

어떤 사람이었을까

다윗은 실제로 있었던 왕일까요? 성경은 그를 베들레헴의 목동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된 사람으로 그립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았다고 전해집니다.

1993년 이스라엘 북부에서 발견된 비석에는 '다윗의 집'이라는 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웃 나라 아람의 왕이 승리를 자랑하며 남긴 글입니다.[1] 많은 학자는 다윗이라는 통치자가 기원전 10세기 무렵 실제로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3]

하지만 골리앗과의 싸움이나 밧세바 사건을 직접 보여 주는 성경 밖 기록은 없습니다. 그의 나라가 얼마나 컸는지도 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립니다.[7]

성경이 전하는 이야기

아래 현대인의 성경 본문을 먼저 읽고, 이어지는 문맥과 해설을 살펴봅니다.

오늘 함께 읽을 본문

사무엘상 · 사무엘하

현대인의 성경 · KLB사무엘상 17:4–11 · 사무엘상 17:45–50 · 사무엘하 5:1–5 · 사무엘하 11:1–5 · 사무엘하 12:1–13 · 사무엘하 21:1938절

사무엘상 17장

4–11절

4그때 가드 사람 골리앗이라는 자가 블레셋 진지에서 나와 이스라엘군에게 싸움을 걸어왔다. 그는 블레셋 장군으로 키가 거의 3미터나 되는 거인인 데다가

5놋으로 만든 투구를 쓰고 무게가 57킬로그램이나 되는 놋갑옷을 입고

6다리에는 놋으로 만든 각반을 대고 놋창까지 들고 나왔다.

7그런데 그 창자루는 베틀채만큼 두꺼웠고 또 그 창날의 쇠 무게는 약 7킬로그램이나 되었으며 호위병 하나가 그의 큰 방패를 들고 그 거인 앞에서 걸어나오고 있었다.

8골리앗은 서서 이스라엘군을 향하여 이렇게 외쳤다. “너희가 왜 나와서 전열을 갖추고 있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며 너희는 사울의 부하가 아니냐? 이제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나에게 보내라.

9만일 너희가 보낸 자가 나를 죽일 수 있으면 우리가 너희 종이 되겠다. 그러나 내가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 종이 되어야 한다.

10내가 오늘 너희 이스라엘군을 이렇게 모욕한다. 자, 나와 싸울 자를 어서 보내라.”

11사울과 이스라엘군은 이 소리를 듣고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었다.

Bible.com에서 사무엘상 17:4–11 원문 확인

사무엘상 17장

45–50절

45이때 다윗이 소리치며 그 블레셋 사람에게 말하였다. “너는 칼과 창을 가지고 나왔지만 나는 전능하신 여호와,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왔다.

46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겨 주실 것이며 나는 너를 죽여 네 목을 자르고 또 블레셋군의 시체를 새와 들짐승에게 주어 먹게 하겠다. 그러면 온 세상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47그리고 이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데 창이나 칼이 필요치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므로 그분이 너희를 우리 손에 넘겨 주실 것이다!”

48골리앗이 다윗의 정면으로 걸어나오자 다윗은 그를 향해 달려가며

49주머니에서 돌 하나를 끄집어내어 물매로 그에게 던졌다. 그러자 그 돌은 골리앗의 이마에 정통으로 맞아 꽂히고 그는 땅바닥에 쓰러졌다.

50이와 같이 다윗은 칼 하나 없이 물매와 돌 하나만 가지고서 그 블레셋 거인을 쓰러뜨리고

Bible.com에서 사무엘상 17:45–50 원문 확인

사무엘하 5장

1–5절

1그때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대표들이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왕과 핏줄을 같이한 형제들입니다.

2사울이 우리의 왕이었을 때에도 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을 지휘한 사람은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도 왕이 이스라엘의 목자와 통치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그래서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그 곳 헤브론에서 계약을 맺자 그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다.

4–5다윗은 30세에 왕이 되어 약 40년 동안 다스렸는데 헤브론에서 7년 6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과 유다를 33년 동안 다스렸다.

Bible.com에서 사무엘하 5:1–5 원문 확인

사무엘하 11장

1–5절

1이듬해 봄, 주로 전쟁이 시작되는 때가 되었을 때 다윗은 이스라엘군과 함께 요압을 출전시켰다. 그들은 암몬 사람을 치고 랍바성을 포위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다.

2어느 날 해질 무렵에 다윗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으로 올라가서 거닐다가 어떤 여자가 목욕하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 여자가 너무 아름다워서

3다윗은 사람을 보내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보게 하였는데 그녀는 엘리암의 딸이며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라는 여자였다.

4다윗은 그 여자를 데려오게 하여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하였다. 그런 다음 그 여자는 부정해진 몸을 씻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5얼마 후에 그 여자는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 사람을 보내 그 사실 을 다윗에게 알렸다.

Bible.com에서 사무엘하 11:1–5 원문 확인

사무엘하 12장

1–13절

1–2그때 예언자 나단이 여호와의 보내심을 받고 다윗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어떤 성에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양과 소를 아주 많이 가진 부자였고

3다른 한 사람은 자기가 사서 기르는 어린 암양 한 마리밖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암양은 온 가족의 애완 동물이 되어 식구들과 함께 같은 상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인은 마치 자기 딸처럼 그 양을 부둥켜안고 귀여워했습니다.

4그런데 최근에 그 부잣집에 손님 한 분이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그 부자는 자기의 양과 소는 아까워서 잡지 못하고 한 마리밖에 없는 그 가난한 사람의 암양을 빼앗아다가 그것을 잡아서 손님을 대접하였습니다.”

5이때 다윗은 크게 격분하며 말하였다. “내가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지만 누구든지 그런 짓을 한 사람은 마땅히 죽어야 한다.

6그는 그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그런 짓을 했으니 그 새끼 양의 4배를 그에게 배상해 주어야 한다.”

7바로 그때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왕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고 사울의 손에서 너를 구출해 내었으며

8사울의 궁전과 그의 처들을 너에게 주었고 또 이스라엘과 유다를 너에게 맡겨 다스리게 하였다.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다면 내가 너에게 더 많은 것을 주었을 것이다.

9그런데 어째서 너는 나 여호와의 법을 무시하고 이런 끔찍한 일을 하였느냐? 너는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았다.

10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처로 삼았으니 칼이 네 집에서 영영 떠나지 않을 것이다.

11내가 너에게 분명히 말하지만 내가 네 집안에서 너에게 미칠 화를 불러일으키고 또 네가 보는 앞에 서 네 처들을 너와 가까운 사람에게 주겠다. 그가 밝은 대낮에 네 처들을 욕보일 것이다.

12너는 그 일을 몰래 해치웠으나 나는 이 일을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보는 앞에서 대낮에 행할 것이다.’ ”

13그러자 다윗이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습니다” 하고 나단에게 자기 잘못을 고백하였다. 그래서 나단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여호와께서는 왕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왕은 죽지 않을 것입니다.

Bible.com에서 사무엘하 12:1–13 원문 확인

사무엘하 21장

19절

19그리고 곱에서 또 다른 전쟁이 있었을 때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의 동생을 죽였는데 그의 창자루는 그 굵기가 베틀채 같았다.

Bible.com에서 사무엘하 21:19 원문 확인
Korean Living Bible (현대인의 성경)Copyright © 1985 by Biblica, Inc.®Used by permission of Biblica, Inc.®. All rights reserved worldwide.

사무엘상 17장에서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은 일대일 싸움을 걸어옵니다. 소년 다윗은 물매와 돌 하나로 그를 쓰러뜨립니다. 다윗은 싸움의 승패가 칼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렸다고 말합니다. 이야기의 중심은 무기보다 이 말에 있습니다.

성경 안에도 다른 기록이 있습니다. 사무엘하 21:19의 히브리어 원문은 엘하난이라는 다른 용사가 골리앗을 죽였다고 적고, 역대상은 그가 죽인 사람이 골리앗의 동생이었다고 말합니다.[4] 우리말 현대인의 성경은 이 구절을 '골리앗의 동생'으로 옮겼습니다.

골리앗의 키도 사본마다 다릅니다. 지금 널리 쓰는 히브리어 본문은 약 3미터, 더 오래된 사해 사본은 약 2미터로 적습니다.[5]

사무엘하 5장에서 이스라엘 지파 대표들은 헤브론에 모여 다윗과 계약을 맺고 그를 왕으로 세웁니다. 왕이 되는 데 대표들의 합의가 중요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사무엘하 11–12장은 다윗이 부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데려온 사건을 전합니다. 사람을 보내고 데려오는 행동의 주인공은 모두 다윗입니다. 예언자 나단은 비유를 들어 다윗의 잘못을 드러내고, 다윗은 죄를 인정합니다.

역사로 확인되는 것

많은 학자는 사무엘서가 다윗 시대보다 수백 년 뒤에 지금 모습으로 정리되었다고 봅니다.[3] 그래서 땅속에서 나온 증거와 견주어 보는 일이 중요합니다.

예루살렘 서남쪽 언덕의 키르벳 케이야파에서는 기원전 1000년 무렵의 요새 도시가 나왔습니다. 발굴 책임자는 이곳을 다윗 시대 유다의 도시로 봅니다. 하지만 블레셋이나 다른 집단의 도시였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6]

골리앗의 고향으로 나오는 가드에서는 골리앗과 비슷한 이름이 적힌 토기 조각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시대에 그런 이름이 쓰였다는 뜻일 뿐, 결투가 있었다는 증거는 아닙니다.[2]

여러 종교가 보는 모습

유대교의 탈무드에는 다윗이 법적으로는 간음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실려 있습니다. 같은 자리에 그의 잘못을 인정하는 다른 랍비들의 견해도 함께 남아 있습니다.[9]

가톨릭은 다윗을 성인으로 공경하고, 진심으로 뉘우친 사람의 본보기로 봅니다.[10] 개신교 안에서는 밧세바도 책임이 있었는지, 왕의 권력에 희생된 사람이었는지를 두고 해석이 나뉩니다.[8]

이슬람의 경전 꾸란은 다우드(다윗)가 잘루트(골리앗)를 죽였고 하나님께 왕권과 지혜를 받았다고 말합니다.[11] 꾸란에는 다우드가 시험받았음을 깨닫고 용서를 구하는 장면도 있지만, 밧세바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12]

다른 학문으로 보면

사회학에서는 나라가 생겨나는 과정을 묻습니다. 학자들은 다윗이 행정 조직을 갖춘 나라의 왕이었는지, 여러 부족을 이끈 지도자에 가까웠는지를 두고 다툽니다.[7]

밧세바 사건은 권력과 동의의 문제로 읽을 수 있습니다. 왕이 부르면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고, 밧세바도 적극적이었다고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8] 다만 오늘의 기준을 3,000년 전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심리학의 눈으로 보면 다윗은 잘못을 숨기려다 더 큰 잘못을 저지릅니다. 나단의 비유는 다윗이 남의 일처럼 듣고 스스로 판결하게 만듭니다. 성경은 다윗의 속마음을 거의 말하지 않으므로, 이것은 하나의 가설입니다.

확실한 것과 모르는 것

함께 생각해 볼 질문

정답을 찾기보다 생각을 나누기 위한 질문입니다.

  1. 골리앗을 죽인 사람이 성경에 두 명으로 나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2. 왕이 되는 데 백성 대표들의 합의가 필요했다는 점은 무엇을 말해 줄까요?
  3. 밧세바는 왕의 부름을 거절할 수 있었을까요?
  4. 역사적 사실인지 불확실한 이야기에서도 배울 점이 있을까요?

출처와 편집 기록

확인한 자료

  1. The Tel Dan Inscription: The First Historical Evidence of King David from the Bible Biblical Archaeology Society. 텔 단 비문의 발견 경위, 'bytdwd' 독해와 반론(필립 데이비스), 비석 건립자에 대한 견해 차이
  2. Archaeological Discoveries: Evidence of Goliath Possibly Found at Tel es-Safi Jewish Virtual Library. 2005년 가드(텔 에스-사피) 발굴에서 나온 ALWT·WLT 명문과 아렌 마이어의 해석
  3. Myth and Reality of King David's Jerusalem Jewish Virtual Library. 다니엘 가브론의 글(Ariel 102, 1996) 재수록. 실로의 계단식 구조물, 오페르의 지표 조사, 성경 편찬 시기에 관한 학계 견해
  4. Goliath Encyclopaedia Judaica (Encyclopedia.com 수록). Bustanay Oded, S. David Sperling, Haïm Z'ew Hirschberg 집필. 엘하난 기록, 역대기의 조화, 랍비 문헌과 꾸란의 골리앗
  5. Goliath Wikipedia. 골리앗의 키에 관한 사본 이문(마소라 본문·4QSamª·칠십인역·요세푸스), 칠십인역의 짧은 판본, 신명기 역사서 가설 요약
  6. Khirbet Qeiyafa, the Biblical Tradition and King David Popular Archaeology. 발굴 책임자 요세프 가르핑켈이 쓴 글. 방사성탄소 연대, 주요 출토물, 대안 해석 소개
  7. What archaeology tells us about the Bible The Christian Science Monitor · 2013-10-20. 크리스타 케이스 브라이언트 기자. 날짜는 기사 갱신일. 핀켈스타인·가르핑켈·아미하이 마자르의 견해
  8. Old Testament scholars are defending Bathsheba amid #MeToo and #ChurchToo Religion Unplugged · 2019-08-14. 리처드 오스틀링 기자. 데이비드슨, 보울러, 모리츠, 알터와 여러 주석 성경의 견해
  9. Babylonian Talmud, Shabbat 56a Sefaria. 랍비 슈무엘 바르 나흐마니가 랍비 요나탄의 이름으로 전한 다윗 변론과 이에 대한 반론
  10. David New Advent (Catholic Encyclopedia). 존 코벳 집필(1908). 메시아의 예표, 참회자의 모범, 로마 순교록 12월 29일
  11. Surah Al-Baqarah 2:251 Quran.com. 무스타파 하타브 영역(The Clear Quran)
  12. Surah Sad 38:24-26 Quran.com. 무스타파 하타브 영역(The Clear Quran)

구약 · 이스라엘의 왕

다윗: 골리앗의 승자, 헤브론의 왕, 나단 앞에 선 죄인

다윗은 히브리 성경에서 가장 길게 서술된 왕입니다. 이 글은 골리앗 이야기의 역사성, 왕권이 세워진 방식, 밧세바 사건의 윤리라는 세 물음을 본문 분석, 고고학, 종교 전통, 윤리학과 심리학의 자료로 나누어 검토하고, 각 주장의 근거가 어디까지 닿는지 따져 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사무엘상 17:4-11 · 사무엘상 17:45-50 · 사무엘하 5:1-5 · 사무엘하 11:1-5 · 사무엘하 12:1-13 · 사무엘하 21:19

인물과 질문

성경이 그리는 다윗과 역사 속 다윗은 어디까지 겹칠까요? 사무엘상·하와 역대기는 다윗을 베들레헴의 목동으로 소개하고, 사울의 궁정에서 이름을 얻은 뒤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이 되고, 이어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되어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은 인물로 그립니다. 그의 시대는 흔히 기원전 10세기로 잡지만, 정확한 연대는 정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입니다.[3]

성경 밖에서 다윗의 이름이 처음 나타나는 자료는 1993년 이스라엘 북부 텔 단에서 발굴된 아람어 비석입니다. 비문은 아람 왕이 '이스라엘 왕'과 '다윗의 집(bytdwd)의 왕'을 이겼다고 자랑하며, 대다수 학자는 이 표현을 다윗을 시조로 삼은 유다 왕조의 이름으로 읽습니다.[1] 다니엘 가브론은 이스라엘 고고학계의 논의를 정리하며, 다윗이라는 이스라엘 통치자가 기원전 10세기 어느 시점에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요약했습니다.[3]

그래서 세 층위를 나눠 읽어야 합니다. 기원전 9세기에 '다윗의 집'이라는 왕조 이름이 쓰였다는 점은 비문으로 확인됩니다. 골리앗과의 결투와 밧세바 사건은 성경의 서술이며, 이를 직접 확인하는 성경 밖 자료는 없습니다. 다윗을 시편의 저자, 메시아의 예표, 이슬람의 예언자로 보는 이해는 후대 전승과 신앙 전통에 속합니다. 『유대 백과사전(Encyclopaedia Judaica)』의 골리앗 항목은 이 이야기에 포로기 이후의 언어·문체·신학적 요소가 있다는 학계의 분석을 소개합니다.[4]

성경 본문 읽기

아래 현대인의 성경 본문을 먼저 읽고, 이어지는 문맥과 해설을 살펴봅니다.

성경 본문은 위의 일반판에 같은 역본으로 한 번만 실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본문으로 이동

오늘 함께 읽을 본문

사무엘상 · 사무엘하

현대인의 성경 · KLB사무엘상 17:4–11 · 사무엘상 17:45–50 · 사무엘하 5:1–5 · 사무엘하 11:1–5 · 사무엘하 12:1–13 · 사무엘하 21:1938절

사무엘상 17장

4–11절

4그때 가드 사람 골리앗이라는 자가 블레셋 진지에서 나와 이스라엘군에게 싸움을 걸어왔다. 그는 블레셋 장군으로 키가 거의 3미터나 되는 거인인 데다가

5놋으로 만든 투구를 쓰고 무게가 57킬로그램이나 되는 놋갑옷을 입고

6다리에는 놋으로 만든 각반을 대고 놋창까지 들고 나왔다.

7그런데 그 창자루는 베틀채만큼 두꺼웠고 또 그 창날의 쇠 무게는 약 7킬로그램이나 되었으며 호위병 하나가 그의 큰 방패를 들고 그 거인 앞에서 걸어나오고 있었다.

8골리앗은 서서 이스라엘군을 향하여 이렇게 외쳤다. “너희가 왜 나와서 전열을 갖추고 있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며 너희는 사울의 부하가 아니냐? 이제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나에게 보내라.

9만일 너희가 보낸 자가 나를 죽일 수 있으면 우리가 너희 종이 되겠다. 그러나 내가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 종이 되어야 한다.

10내가 오늘 너희 이스라엘군을 이렇게 모욕한다. 자, 나와 싸울 자를 어서 보내라.”

11사울과 이스라엘군은 이 소리를 듣고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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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7장

45–50절

45이때 다윗이 소리치며 그 블레셋 사람에게 말하였다. “너는 칼과 창을 가지고 나왔지만 나는 전능하신 여호와,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왔다.

46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겨 주실 것이며 나는 너를 죽여 네 목을 자르고 또 블레셋군의 시체를 새와 들짐승에게 주어 먹게 하겠다. 그러면 온 세상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47그리고 이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데 창이나 칼이 필요치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므로 그분이 너희를 우리 손에 넘겨 주실 것이다!”

48골리앗이 다윗의 정면으로 걸어나오자 다윗은 그를 향해 달려가며

49주머니에서 돌 하나를 끄집어내어 물매로 그에게 던졌다. 그러자 그 돌은 골리앗의 이마에 정통으로 맞아 꽂히고 그는 땅바닥에 쓰러졌다.

50이와 같이 다윗은 칼 하나 없이 물매와 돌 하나만 가지고서 그 블레셋 거인을 쓰러뜨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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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5장

1–5절

1그때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대표들이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왕과 핏줄을 같이한 형제들입니다.

2사울이 우리의 왕이었을 때에도 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을 지휘한 사람은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도 왕이 이스라엘의 목자와 통치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그래서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그 곳 헤브론에서 계약을 맺자 그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다.

4–5다윗은 30세에 왕이 되어 약 40년 동안 다스렸는데 헤브론에서 7년 6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과 유다를 33년 동안 다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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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11장

1–5절

1이듬해 봄, 주로 전쟁이 시작되는 때가 되었을 때 다윗은 이스라엘군과 함께 요압을 출전시켰다. 그들은 암몬 사람을 치고 랍바성을 포위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다.

2어느 날 해질 무렵에 다윗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으로 올라가서 거닐다가 어떤 여자가 목욕하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 여자가 너무 아름다워서

3다윗은 사람을 보내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보게 하였는데 그녀는 엘리암의 딸이며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라는 여자였다.

4다윗은 그 여자를 데려오게 하여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하였다. 그런 다음 그 여자는 부정해진 몸을 씻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5얼마 후에 그 여자는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 사람을 보내 그 사실 을 다윗에게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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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12장

1–13절

1–2그때 예언자 나단이 여호와의 보내심을 받고 다윗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어떤 성에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양과 소를 아주 많이 가진 부자였고

3다른 한 사람은 자기가 사서 기르는 어린 암양 한 마리밖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암양은 온 가족의 애완 동물이 되어 식구들과 함께 같은 상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인은 마치 자기 딸처럼 그 양을 부둥켜안고 귀여워했습니다.

4그런데 최근에 그 부잣집에 손님 한 분이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그 부자는 자기의 양과 소는 아까워서 잡지 못하고 한 마리밖에 없는 그 가난한 사람의 암양을 빼앗아다가 그것을 잡아서 손님을 대접하였습니다.”

5이때 다윗은 크게 격분하며 말하였다. “내가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지만 누구든지 그런 짓을 한 사람은 마땅히 죽어야 한다.

6그는 그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그런 짓을 했으니 그 새끼 양의 4배를 그에게 배상해 주어야 한다.”

7바로 그때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왕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고 사울의 손에서 너를 구출해 내었으며

8사울의 궁전과 그의 처들을 너에게 주었고 또 이스라엘과 유다를 너에게 맡겨 다스리게 하였다.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다면 내가 너에게 더 많은 것을 주었을 것이다.

9그런데 어째서 너는 나 여호와의 법을 무시하고 이런 끔찍한 일을 하였느냐? 너는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았다.

10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처로 삼았으니 칼이 네 집에서 영영 떠나지 않을 것이다.

11내가 너에게 분명히 말하지만 내가 네 집안에서 너에게 미칠 화를 불러일으키고 또 네가 보는 앞에 서 네 처들을 너와 가까운 사람에게 주겠다. 그가 밝은 대낮에 네 처들을 욕보일 것이다.

12너는 그 일을 몰래 해치웠으나 나는 이 일을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보는 앞에서 대낮에 행할 것이다.’ ”

13그러자 다윗이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습니다” 하고 나단에게 자기 잘못을 고백하였다. 그래서 나단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여호와께서는 왕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왕은 죽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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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21장

19절

19그리고 곱에서 또 다른 전쟁이 있었을 때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의 동생을 죽였는데 그의 창자루는 그 굵기가 베틀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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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7장은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엘라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4–11절은 가드 출신 장수 골리앗의 키와 청동 갑옷, 베틀 채 같은 창을 길게 묘사하고 일대일 결투로 승패를 가리자는 그의 도발을 전합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그의 키를 약 3미터로 옮기는데, 이는 마소라 본문(중세 유대 학자들이 전승한 히브리어 표준 본문)의 '여섯 규빗 한 뼘'을 따른 수치입니다. 그보다 오래된 사해 사본 사무엘서(4QSamª)와 요세푸스, 칠십인역(고대 그리스어 번역)은 '네 규빗 한 뼘', 곧 약 2.06미터로 적으며, 많은 학자는 작은 수가 필사 과정에서 커졌다고 봅니다.[5]

45–50절의 무게중심은 무기보다 선언에 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이 칼과 창을 들고 왔지만 자신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왔다고 말하고, 전쟁은 여호와께 속했다고 선언합니다. 본문은 다윗이 물매와 돌 하나로 골리앗을 쓰러뜨렸고 그의 손에 칼이 없었다고 굳이 덧붙입니다. 이 장면은 전투 보고이면서, 이스라엘의 승리가 군사력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렸다는 신학적 주장을 서사로 펼친 것입니다. 칠십인역 주요 사본에는 다윗이 형들에게 음식을 가져가는 대목(17:12–31)과 사울이 다윗을 몰라보는 대목(17:55–58)이 없어서, 이 장이 두 이야기를 합친 결과인지 그리스어 역본이 모순을 줄이려 줄인 것인지를 두고 학자들의 판단이 갈립니다.[5]

사무엘하 21:19의 히브리어 본문은 베들레헴 사람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을 죽였다고 적고, 역대상 20:5는 엘하난이 죽인 이가 골리앗의 동생 라흐미였다고 적습니다.[4] 현대인의 성경은 사무엘하 21:19를 '골리앗의 동생'으로 옮겨 역대기와 맞춘 번역을 택했으므로, 번역문만 읽어서는 히브리어 본문의 긴장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사무엘하 5:1–5에서 이스라엘 지파 대표들은 헤브론으로 와서 다윗과 여호와 앞에서 계약을 맺고 그에게 기름을 붓습니다. 여기서 계약으로 옮긴 히브리어 베리트(berit)는 양측의 의무를 정하는 협정을 뜻합니다. 본문은 다윗의 왕권을 하나님의 선택과 지파 대표의 합의라는 두 기둥 위에 세우며, 통치 기간을 헤브론 7년 6개월, 예루살렘 33년으로 제시합니다.

사무엘하 11:1–5는 왕들이 출전하는 때에 다윗이 예루살렘에 남았다는 대비로 시작합니다. 다윗은 사람을 보내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보고, 다시 사람을 보내 밧세바를 데려옵니다. '보내다(샬라흐)'와 '취하다·데려가다(라카흐)'의 주어는 모두 다윗이고, 밧세바가 본문에서 하는 말은 임신을 알리는 한마디뿐입니다. 사무엘하 12:1–13에서 예언자 나단은 가난한 사람의 하나뿐인 암양을 빼앗은 부자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윗이 분노하며 판결하자 '당신이 그 사람입니다(아타 하이시)'라고 말합니다. 본문의 고발과 심판은 다윗을 향하며, 밧세바를 공모자로 볼지 피해자로 볼지는 본문이 직접 답하지 않는 후대 해석의 문제입니다.[8]

역사와 고고학

역사성 논의는 사무엘서가 언제 기록되었는지에서 출발합니다. 널리 받아들여지는 가설은 사무엘서를 신명기 역사서(신명기에서 열왕기하까지를 하나의 편집 전통으로 보는 학설)의 일부로 보고, 첫 판은 기원전 7세기 말 요시야 왕의 궁정에서, 개정판은 6세기 포로기에 나왔다고 추정합니다.[5] 가브론도 성경 문서의 수집과 편집이 기원전 7세기에 시작되었다는 것이 현대 학계의 합의라고 소개합니다.[3] 다만 편집이 늦었다는 사실이 곧 내용 전체가 허구라는 뜻은 아니며, 더 오래된 자료가 들어 있을 가능성도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텔 단 비문은 1993년 아브라함 비란의 발굴에서 나왔습니다. 비석을 세운 왕은 다마스쿠스의 하사엘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지만, 조지 아타스처럼 그의 아들(기원전 796년경)을 지목하는 학자도 있습니다.[1] 최소주의(성경의 역사 서술 상당 부분을 후대의 창작으로 보는 학파) 학자 필립 데이비스는 bytdwd를 왕조가 아닌 지명으로 읽어야 한다고 반론했으나, 다수 학자는 '다윗의 집'으로 읽습니다.[1]

예루살렘 다윗성 발굴에서 이갈 실로는 20미터 높이의 계단식 석조 구조물을 찾아 기원전 12–10세기로 연대를 잡았고, 이것이 다윗이 차지해 확장했다는 여부스 요새의 기초였을 가능성이 거론됩니다. 아비 오페르의 지표 조사는 기원전 11–10세기에 유다 고지대 인구가 거의 두 배로 늘었다고 보고했습니다.[3]

예루살렘 서남쪽, 엘라 골짜기를 내려다보는 언덕의 키르벳 케이야파는 이 논쟁의 중심에 있습니다. 발굴 책임자 요세프 가르핑켈은 밀봉된 항아리 속 올리브 씨앗의 방사성탄소 연대로 이 도시가 기원전 1000–970년경 파괴되었다고 보고합니다. 그는 폭 약 4미터의 포곽벽(두 겹 벽 사이를 방으로 나눈 성벽), 남쪽과 서쪽의 두 성문, 손가락 자국이 찍힌 저장 항아리 700여 점, 돼지와 개의 뼈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이곳을 다윗 시대 유다의 요새 도시로 해석합니다. 비판자들은 이 유적을 블레셋이나 가나안의 도시, 혹은 사울이 세운 이스라엘 왕국의 도시로 보기도 합니다.[6] 텔아비브 대학의 이스라엘 핀켈스타인은 가르핑켈의 대표적인 비판자입니다. 그는 이 시기의 시작을 기원전 1000년에서 920년으로 늦추는 저연대기를 제안했고, 2012년에는 동료 알렉산더 판탈킨과 함께 가르핑켈의 주장을 하나하나 반박하는 논문을 썼습니다. 핀켈스타인의 오랜 논쟁 상대인 히브리 대학의 아미하이 마자르는 비판자들을 비판하는 글에서, 전통적인 '보수적 편향'을 해체하려는 학자들 역시 자기 역사관에 치우쳐 있지 않은지 물었습니다.[7]

골리앗의 고향으로 서술된 가드(텔 에스-사피)에서는 2005년 바르일란 대학 아렌 마이어의 발굴단이 기원전 10–9세기 토기 조각에서 ALWT와 WLT라는 비셈어계 이름을 찾았습니다. 마이어는 골리앗 이야기가 당시의 문화적 실재를 반영한다는 증거로 보인다고 말했지만, 이름의 유사성은 그 사건을 증명하지 못합니다.[2]

정리하면 기원전 9세기의 '다윗의 집'은 확인된 사실입니다. 10세기 유다 고지대에 요새 도시와 정치 조직이 생겨났고 그 지도자 가운데 다윗이 있었다는 것은 개연성 있는 추정이며, 그 나라의 규모와 성격은 논쟁 중입니다. 골리앗과의 결투와 밧세바 사건 자체를 확인해 주는 성경 밖 증거는 지금까지 없습니다.

종교 전통의 해석

랍비 유대교는 밧세바 사건을 피하지 않고 논쟁했습니다. 바빌로니아 탈무드 샤바트 56a에서 랍비 슈무엘 바르 나흐마니는 랍비 요나탄의 이름으로 '다윗이 죄를 지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틀렸다'고 말하고, 다윗의 군사들이 출전하기 전에 아내에게 이혼 증서를 써 주었다는 관행을 들어 법적으로 간음이 성립하지 않았다고 풀이합니다. 같은 대목에는 다윗의 다른 과오를 인정하는 랍비들의 반론도 실려 있어, 전통 안의 견해 차이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9] 랍비들의 이야기 전승은 골리앗을 룻의 동서 오르바와 연결하고, 그가 아침저녁으로 나타나 이스라엘이 쉐마(신명기 6장의 신앙 고백)를 낭송하지 못하게 했다고 전합니다.[4]

1908년판 가톨릭 백과사전의 다윗 항목은 교회가 다윗을 메시아의 예표(앞선 인물이나 사건이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 준다는 해석)로 보아 왔다고 설명하고, 그의 뉘우침이 진실하여 하나님이 용서했다는 점에서 그를 참회자의 모범으로 부릅니다. 가톨릭교회는 다윗을 성인으로 공경하며 로마 순교록 12월 29일에 그를 기록합니다.[10] 개신교권에서는 밧세바의 책임을 두고 해석이 갈립니다. NIV 스터디 바이블은 그녀를 저항하지 않은 상대로 묘사했고, 재림교 학자 리처드 데이비드슨은 오늘의 말로 하면 권력형 강간이라고 규정했으며, 무디 성경학교와 댈러스 신학교에서 공부한 세라 보울러도 다윗의 행위를 강간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8]

꾸란은 다윗(다우드)을 예언자이자 왕으로 다룹니다. 2:251은 다우드가 잘루트(골리앗)를 죽였고 하나님이 그에게 왕권과 지혜를 주었다고 말합니다.[11] 꾸란에서 잘루트는 탈루트(사울) 이야기 안에서 등장합니다.[4] 38:24–26에서 다우드는 두 사람의 송사를 판결한 뒤 그것이 자신에 대한 시험이었음을 깨닫고 엎드려 용서를 구하며, 하나님은 그를 용서하고 땅의 권위자로 세워 진리로 판결하고 욕망을 따르지 말라고 명합니다.[12] 이 대목에는 밧세바나 우리아의 이름이 나오지 않으므로, 이 장면을 성경의 밧세바 이야기와 연결할지는 해석의 문제로 남습니다.

심리학·철학·과학의 시선

정치사회학의 국가 형성 논의는 족장 사회(혈연과 개인적 충성으로 한 지도자가 여러 집단을 느슨하게 이끄는 형태)와 국가(행정 조직·세금·요새를 갖춘 형태)를 구별합니다. 가르핑켈은 요새와 같은 방식으로 표시한 저장 항아리를 중앙 행정의 흔적으로 보고 다윗 시대에 이미 국가 단계에 이르렀다고 주장합니다.[6] 가르핑켈은 이 발견이 다윗을 '천막 속 베두인 족장'에 지나지 않았다고 보는 다른 학자들의 그림을 반박한다고 말합니다. 반면 핀켈스타인은 기존 연대가 100년 가까이 어긋났다고 보아, 10세기의 큰 왕국을 뒷받침하던 증거를 약하게 봅니다.[7] 사무엘하 5장의 헤브론 계약 장면은 왕권이 군사적 성공만이 아니라 지파 장로들과의 협상으로 정당성을 얻었다는 기억을 담고 있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지만, 그것이 실제 협정의 기록인지 후대 왕조 이념의 표현인지는 본문만으로 가릴 수 없습니다.

윤리학에서 밧세바 사건의 쟁점은 권력과 동의입니다. 베리 칼리지 교목 에린 모리츠는 강압 아래의 동의는 동의가 아니라고 말했고, 반대로 성서학자 로버트 알터는 히브리어 본문이 밧세바의 적극적 참여나 기회주의를 암시할 수 있다고 읽었습니다.[8] 다만 개인의 자율적 동의라는 현대 개념을 혼인과 간음을 가문과 남편의 권리 중심으로 이해한 고대 사회에 그대로 옮기는 데는 시대착오의 위험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왕이 사람을 보내 데려왔다는 본문의 서술 자체가 권력의 비대칭을 드러낸다는 점은 시대와 상관없이 관찰할 수 있습니다.

심리학의 눈으로 보면 은폐가 커져 가는 과정이 두드러집니다. 사무엘하 11장 후반에서 다윗은 우리아를 전선에서 불러들여 사태를 덮으려다 실패하자 그를 죽게 만드는데, 작은 잘못을 숨기려는 시도가 더 큰 잘못으로 번지는 과정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나단의 비유는 다윗이 남의 일로 여길 때 내린 판결을 그에게 되돌려 자기 정당화를 우회하는 장치로 볼 수 있습니다. 본문은 다윗의 속마음을 거의 서술하지 않으므로, 이 분석은 인물에 대한 진단이 아니라 서사 구조에 대한 가설입니다.

논증의 평가와 한계

더 생각할 질문

아래 질문은 본문에서 무엇을 읽을 수 있는지에서 시작해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평가할지로 나아갑니다.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1. 사무엘상 17장, 사무엘하 21:19의 히브리어 본문, 역대상 20:5는 골리앗의 죽음을 각각 어떻게 서술합니까? 이 차이를 설명하는 가설 가운데 어느 것이 증거와 더 잘 맞는다고 보십니까?
  2. 사무엘하 5장의 헤브론 계약은 왕권의 정당성을 어디에서 찾고 있으며, 고고학의 국가 형성 논쟁과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까요?
  3. 사무엘하 11장에서 각 동사의 주어를 따라가 보면 밧세바의 책임에 대한 판단이 어떻게 달라집니까?
  4. 현대의 동의 개념으로 고대 본문을 평가할 때 얻는 통찰과 잃는 맥락은 각각 무엇일까요?
  5. 한 인물에 대한 역사적 판단과 신앙적 평가가 엇갈릴 때, 두 판단은 서로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출처와 편집 기록

확인한 자료

  1. The Tel Dan Inscription: The First Historical Evidence of King David from the Bible Biblical Archaeology Society. 텔 단 비문의 발견 경위, 'bytdwd' 독해와 반론(필립 데이비스), 비석 건립자에 대한 견해 차이
  2. Archaeological Discoveries: Evidence of Goliath Possibly Found at Tel es-Safi Jewish Virtual Library. 2005년 가드(텔 에스-사피) 발굴에서 나온 ALWT·WLT 명문과 아렌 마이어의 해석
  3. Myth and Reality of King David's Jerusalem Jewish Virtual Library. 다니엘 가브론의 글(Ariel 102, 1996) 재수록. 실로의 계단식 구조물, 오페르의 지표 조사, 성경 편찬 시기에 관한 학계 견해
  4. Goliath Encyclopaedia Judaica (Encyclopedia.com 수록). Bustanay Oded, S. David Sperling, Haïm Z'ew Hirschberg 집필. 엘하난 기록, 역대기의 조화, 랍비 문헌과 꾸란의 골리앗
  5. Goliath Wikipedia. 골리앗의 키에 관한 사본 이문(마소라 본문·4QSamª·칠십인역·요세푸스), 칠십인역의 짧은 판본, 신명기 역사서 가설 요약
  6. Khirbet Qeiyafa, the Biblical Tradition and King David Popular Archaeology. 발굴 책임자 요세프 가르핑켈이 쓴 글. 방사성탄소 연대, 주요 출토물, 대안 해석 소개
  7. What archaeology tells us about the Bible The Christian Science Monitor · 2013-10-20. 크리스타 케이스 브라이언트 기자. 날짜는 기사 갱신일. 핀켈스타인·가르핑켈·아미하이 마자르의 견해
  8. Old Testament scholars are defending Bathsheba amid #MeToo and #ChurchToo Religion Unplugged · 2019-08-14. 리처드 오스틀링 기자. 데이비드슨, 보울러, 모리츠, 알터와 여러 주석 성경의 견해
  9. Babylonian Talmud, Shabbat 56a Sefaria. 랍비 슈무엘 바르 나흐마니가 랍비 요나탄의 이름으로 전한 다윗 변론과 이에 대한 반론
  10. David New Advent (Catholic Encyclopedia). 존 코벳 집필(1908). 메시아의 예표, 참회자의 모범, 로마 순교록 12월 29일
  11. Surah Al-Baqarah 2:251 Quran.com. 무스타파 하타브 영역(The Clear Quran)
  12. Surah Sad 38:24-26 Quran.com. 무스타파 하타브 영역(The Clear Qu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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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하기

다윗 이야기에서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과 신앙의 고백으로 읽어야 할 부분을 나눈다면, 경계선은 어디에 그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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